메모: 전통생태지식 분석을 위한 틀구조 (Sacred Ecology) 생태학

결국 <성스러운 생태학> 4판(Fikret Berkes, Sacred Ecology, New York: Routledge, 2018)을 구입해서 읽고 있다. 잘 산 것 같다. 내가 원래 갖고 있던 2판보다 많은 부분이 보완된 것 같다. 일부만 거칠게 메모해 둔다.

1. 배경
저자인 Fikret Berkes는 원래 해양과학자였다. 그러나 박사학위 취득 후에 과학철학을 접하게 되고, 여차저차 멋진 포닥 자리를 포기하고서 인류학자와 함께 크리족의 어로 활동 연구에 참여하게 되었다(1974년부터). 그리고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은 수확을 얻게 되었다. 크리족이 가진 조류, 바다, 물고기 등에 대한 지식에 놀라게 되었고, 무엇보다도 공유지의 비극 등을 비껴 가는 그들의 전통적인, 공동체 기반의 자원 관리 방식에서 깊은 인상을 받게 되었다.


이어지는 내용

종교를 종교로 정의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종교학

종교와 신화는 어떻게 다른가?
종교를 종교로 정의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1. 

가장 일반적인 수준에서 말하자면, 신화는 ‘이야기’입니다. 글자대로 풀어서 신화를 ‘신에 관한 이야기’라고도 하지만, 저는 로버트 시걸이 말하듯이, 신화를 ‘어떤 중요한 것에 관한 이야기’ 정도로 폭넓게 정의하고 싶습니다. 


이에 비해 종교는 보통 –이야기뿐 아니라- 이야기를 포함해서 더 넓은 범위까지 포괄하는 단어로 흔히 사용됩니다. 종교라고 하면, 우리는 신이나 어떤 초월적 존재에 대한 믿음, 숭배 의례, 신도들이 모인 조직, 성직자... 등을 떠올리기 십상입니다. 그렇지만 구체적으로 따지면서 얘기해보면, 저마다 그리는 ‘종교’라는 것이 서로 똑같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물을 수 있습니다. 일반적 의미에서 ‘종교’라는 것은 무엇일까? 과연 ‘무엇이 종교를 종교라고 정의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일까?’ 그런데 여기서 대답은 명쾌하지 않습니다. 간단히 말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요. 왜냐하면 종교라는 단어로 지시될 수 있는 어떤 고유한 영역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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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학적 시선으로 만나는 종교 - 닫는 말 생태학적 시선으로 만나는 종교

우리는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문화에 대해서 낭만적인 동경을 품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종교문화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서구 사회에서는 환경오염을 비롯한 생태 문제가 심화되면서, 근대 서구문명이 낳은 생태계 위기 문제를 극복할 힘을 ‘동양’의 ‘고상한 종교들’이 가지고 있으리라 기대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멀리 떨어져있는 “고상한 타자(noble Other)”들의 종교문화에 대한 막연한 환상은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모든 종교 전통은 변화하는 사회문화적 환경, 나아가 생태적 환경 속에서 적응하면서 흘러가는 역동적 과정 속에 있으며, 여기에는 온갖 다채로운 목소리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결코 변하지 않는 견고한 실체로서의 종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지요. 우리는 불교, 그리스도교, 힌두교 등의 명칭으로 편의상 뭉뚱그려지는 종교 전통들이 결코 일관된 구성물이 아니라 종종 모순들로 가득 차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바로 이러한 모호함이 있기에, 어떠한 맥락에서 어떠한 시각으로 접근할 것인지, 주체들의 선택이 중요하게 대두되는 것이지요. 

이 책은 오늘날 다각도에서 생태환경 문제를 경험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지금 우리가 생태학적 문제의식을 가지고 여러 종교전통을 만나면서 풀어놓는 –여러 가지 가능성 가운데 하나의- 이야기였습니다. 지금까지 생태학적 시선으로 종교를 만나는 모험을 감행했지만, 어쩌면 종교들이 –오늘날의 생태계 위기 문제에 대해- 주는 ‘대답’이 아니라, 종교들이 새삼 일깨우는 ‘물음’을 통해 일상을, 세계를 다시 상상할 수 있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쉬운 해답보다 좋은 물음을 만나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길게 보면 삶 속에서는 쉬운 해답보다 좋은 물음을 만나기가 더 어려운데, 그것이야말로 더 중요하며 더 오랫동안 깊이 영향을 미치는 것 같습니다. 말쑥하진 않더라도, 물음을 통해 촉발된 자유로운 상상이 열어놓은 문제의식은 손쉬운 해답보다 훨씬 오래 남으며, 새로운 생각과 성찰의 가능성을 열어주기 때문입니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도 그러하지만, 진정한 만남은 만남의 주체들을 변화시킨다고 합니다. 오늘날 생태계 위기 상황에서 생태학적 시선으로 종교문화들과의 만남을 시도한 이 책은 종교와 생태의 수많은 만남의 가능성들 가운데 한 가지 사례에 불과합니다. 바라건대, 이 한 가지 사례가 작은 노래가 되어 여러 사람들에게 또 다른 그들만의 노래들을 이끌어내는 하나의 계기가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여기, 생태계 위기 상황에서 왜 하필 종교를? (펼치는 말) 생태학적 시선으로 만나는 종교

펼치는 말 : 지금 여기, 생태계 위기 상황에서 왜 하필 종교를? 


1. 

오늘날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보면, 마치 물질주의와 소비주의라는 바퀴를 달고서 무시무시한 속도로 질주하는 개발이란 이름의 기차를 타고, 생태계 파멸이라는 불구덩이 속으로 달려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거나 되돌리기란 거의 불가능할 것이라고 암울하게 전망하면서 분노하거나, 냉소하거나, 혹은 아예 이러한 상황을 보지 않으려고 합니다. 질주하는 기차에서 내릴 생각은 차마 하지 못합니다. 그저 사람들은 분노와 무기력 사이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하고 있습니다. 

파멸로 인도하는 기차에서 내리기 위해서는 물질, 소비, 개발, 경쟁, 착취 등을 바탕으로 미친 듯이 굴러가는 것과는 다른 세계를 상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종교들은 존재의 의미에 대해서, 우주의 구성과 그 의미에 대해서, 고통의 의미와 극복에 대해서, 세계 속에서 인간의 바람직한 존재 방식에 대해서 설명해주는 저마다의 이야기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책은 갈수록 심각해지는 생태적 위기를 경험하고 있는 (1) 오늘날 “우리”가 (2) 성장 중심적, 기계적 세계관과는 구별되는 시각으로 우주의 구성과 인간의 자리에 대해 다양하게 상상해보기 위해서 (3) 여러 “종교들”이 인간과 우주에 대해서 설명하는 기본적인 이야기들을 (4) 생태학적 관심을 통해 다시 만나보려는 의도에서 기획되었습니다. 제목에서 ‘생태학적 시선’이라는 표현은 인간중심적인 사유틀을 벗어나서 인간을 포함한 생태계라는 더 큰 틀에서 세계를 바라보려는 이 책의 지향을 나타냅니다.




이어지는 내용

<진짜 예수는 일어나 주시겠습니까?> 옮긴이 후기

쇼는 끝났습니다. 

이제 사회자가 “진짜 예수는 일어나 주시겠습니까?”라고 묻는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1. 

모든 권위는 도전받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현대 사회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유독 두드러지는 것 같습니다. 사회나 집단의 구성원 대다수가 당연하게 인정하는 권위, 견고하게 발 디딜 받침대는 아무데도 없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받침대를 흔들고, 권위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던 모든 것에 대해 물음을 던질 수 있다는 것은 현대 사회의 미덕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불안의 원천이 되기도 합니다.

이 책에서 우리는 현대 사회에서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권위의 원천으로 여겨지는 “예수”의 역사성에 대한 물음을 만납니다. 제목부터가 도발적입니다. <진짜 예수는 일어나 주시겠습니까?>라니요! 감히 현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종교 가운데 하나인 그리스도교의 “예수님”에게 말입니다. 

비록 TV쇼 ‘진실게임’의 형식을 빌어오긴 했지만, 토론의 내용은 사뭇 진지합니다. 복음주의 계열의 신학자인 크레이그에게는 예수가 진짜로 부활했는가, ‘우리가 믿고 있는 예수’가 역사적 토대를 가지고 있는가의 문제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따라서 그는 특히 예수 부활의 역사성을 주장합니다. 그런데 자유주의적 신학자인 크로산은 그보다 성서에 기록된 기사들을 통해 하느님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메시지가 무엇인가가 더 중요하다고 주장합니다.

크레이그와 크로산은 저마다 진지하고 성실하게, 나름의 근거를 가지고 자신의 주장을 펼칩니다. 복음주의 계열과 자유주의 계열의 여러 토론자들(응답자들)도 서로 저마다의 목소리로 진지하게-이 점이 중요합니다- 토론에 임합니다. 이 책에서 우리는 ‘예수’에 대한 다양한 지성적이고 진지한 목소리들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는 예수에 대해서, 그리스도교에 대해서, 믿음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볼 기회를 갖게 됩니다.

도전은 그것을 도전이라고 여기는 모두에게 주어졌습니다. 발밑을 흔드는 것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미지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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